삶을 담는 도시의 언어

Bosco Verticale

다시 찾은 밀라노는 역시 여유로움의 도시였다. 중심지의 오랜 건축물과 잘 조성된 녹지, 돌로 깔린 도로 바닥과 100년 넘은 트램은 도시에 체적으로 느리게 변하는 시간의 층을 만들어내고, 복잡하고 어수선한 것들을 마치 물레질하듯 가다듬고 있었다. 흐린 날에는 흐린 대로 윤곽을 감추고, 맑은 날은 맑은 대로 선명하게 드러내며, 날씨와 무관하게 불편하지 않은 감성을 주었다.

밀라노는 오랫동안 패션과 금융의 중심지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도시를 직접 걸어보니, 진정한 매력은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건축적 실험에 있었다. 특히 쇼핑 디스트릭트 인근의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 지구는 현대 도시가 어떻게 모던함과 자연, 그리고 삶의 여유를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와도 같았다.

발코니에서 수직 숲으로

아마도 이탈리아 주거 문화의 오랜 전통일 것이다. 골목을 거닐다 아파트 발코니를 유심히 보면, 어느 집이든 화분과 허브, 작은 꽃들이 발코니를 빼곡히 채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농경 문화 속에서 자연을 경작해온 이탈리아인들에게 흙을 만지고 녹지를 가꾸는 행위는 도심 속 자연을 일구는 본능적 방식으로 해석된다. 좁은 공간이지만, 우리 집만의 정원이 발코니마다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스테파노 보에리(Stefano Boeri)가 설계한 보스코 베르티칼레(Bosco Verticale)를 처음 마주했을 때, 이것이 바로 그 익숙한 발코니 문화를 건물 전체로 확장한 혁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건축물은 900여 그루의 나무와 2만여 개의 식물이 27층 건물의 파사드를 뒤덮고 있다. 건축 전문가들은 이 건축물이 특별한 이유가 단순히 녹지를 추가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탈리아 가정집 발코니에 담겨 있던 '치유의 기능'과 '녹지에 대한 애착'이라는 정서적 코드를 읽어내고, 이를 현대 건축의 언어로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코니의 화분이 집주인의 미감과 삶의 활력을 드러내는 정서적 파사드였다면, 보스코 베르티칼레는 도시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생태적 파사드다. 이 건축물은 주거의 개념을 넘어 생물학적 공존과 문화적 전통의 계승으로 건축의 역할을 확장했고, 밀라노를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의 프로토타입으로 만드는 강력한 문화적 선언이 되었다.

도시를 캔버스 삼아

보스코 베르티칼레에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너른 공원 한편에 인상적인 대형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두 아이가 벽을 힘껏 밀어내는 그림과 함께 'CLOSE THE GAP, OPEN YOUR FUTURE'라는 선언적 메시지가 적혀 있다.

밀라노 이솔라 지구의 이 벽화는 이탈리아 통신 회사 패스트웹(Fastweb)이 후원하고 아티스트 줄리오 로스크(Giulio Rosk)가 작업한 사회적 프로젝트다. 회사의 'Close the Gap' 캠페인을 시각화한 작업으로, 디지털 격차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한다. 두 건물에 걸쳐 그려진 소년과 소녀는 미래 세대를 상징하며, 이들이 건물 벽을 밀어내는 모습은 낡은 구조와 사회적 관습을 적극적으로 허무는 행동을 형상화한다.

이 프로젝트의 완성은 낡은 주거 건물의 파사드가 도시 재생의 캔버스로 전환된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건축이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공공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도시 재생을 거친 이솔라 지역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 되었고, 이 벽화는 물리적 변화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희망이라는 의미적 재생까지 달성한 성공적인 공공 미술 사례로 평가받는다.

주위에 조성된 공원은 잠시 쉬어가기 좋다. 도시 개발이 고밀도화를 추구하더라도 '공간의 여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탈리아 건축의 원칙이 이곳에 자연스럽게 구현되어 있었다. 진정한 사치는 높은 건물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느낄 수 있는 쉼과 그로부터의 균형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과거와 미래의 대화

보스코 베르티칼레에서 바라본 큰 공원 저편 북서쪽에는 적갈색 벽돌의 옛 창고같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카사 델라 메모리아(Casa della Memoria), 즉 '기억의 집'이라고 불린다. 카사 델라 메모리아는 밀라노 포르타 누오보–이졸라 재생의 중심에서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시민 아카이브로, 건축 스튜디오 바우쿠(Baukuh)가 설계해 2015년 완공했다. 건물에는 나치·파시즘 시기 희생자들의 기록과 사진, 유대인 박해 자료, 밀라노 레지스탄자(저항운동)의 증거들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건물은 도시가 겪은 폭력, 저항, 회복의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한 공공의 기억 저장소로, 다음 세대가 역사를 직접 접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으로 운영된다.

옆에 투명하고 날렵한 현대적 구조물이 나란히 서 있는 대조적인 풍경이 밀라노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급진적으로 나아가는 도시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전문가들은 밀라노 건축의 본질을 '기능적 혁신과 미학적 대담함의 공존'으로 요약한다. 이곳의 건축은 단순히 외형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직면한 문제—환경 오염, 사회적 격차, 삶의 질 저하—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제안하는 솔루션 디자인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디자인의 심장부답게, 포르타 누오보 지구의 재생 공간은 그 자체가 예술과 실용이 결합된 살아있는 작품이다. 그것은 가장 세련된 형태의 도시 생활을 제안하며,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건축은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며칠을 이 도시에서 보내며 한 질문에 밀라노의 답은 명확했다. 삶, 자연, 그리고 사람. 밀라노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 삶이란 언어로 우리에게 그들이 사랑하는 공간을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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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쌓아올린 거룩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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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구조, 그리고 기억의 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