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구조, 그리고 기억의 층
Fondazione Prada
비가 오고 있었다. 패션과 건축의 도시, 밀라노를 걷기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날씨라고 생각했다. 기대했던 풍경이 흐릿하게 번져 아쉬웠고, 하늘을 원망했다. 하지만 도시는, 우산을 거의 쓰지 않고 걷는 사람들처럼 당당했다. 비가 개길 바란 건 나뿐인 것 같았다. 그리고, Fondazione Prada에 도착했을 때, 비는 오히려 이 아름다운 도시의 질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젖은 금빛 벽, 콘크리트의 회색,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까지 — 모든 것이 하나의 장면처럼 어우러졌다.
Fondazione Prada에 방문했을 때, 알던 브랜드 프라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간의 이름에 다섯 글자 P.R.A.D.A 뿐, 이 공간은 오롯한 철학과 예술, 영화, 디자인이 함께 호흡하는 복합문화 플랫폼이었다.
밀라노 남쪽, 오래된 산업지대의 한 모퉁이에 자리한 Fondazione Prada는 도시와 전혀 다른 리듬을 품고 있다. 한때 증류소였던 이곳은 콘크리트, 금박, 유리, 벽돌이 서로 다른 시대의 문장이 하나의 글이 되듯 어우러져 있다. 낮의 햇살은 금빛 외벽에 부딪혀 내부로 스며들고, 오후의 그림자는 콘크리트 벽을 따라 천천히 흐른다. 벽돌과 콘크리트, 유리가 둘러싼 공간을 거닐다 보면 '건축'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구조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공간을 설계한 인물은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다. 그는 20세기 후반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 사상가이자,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로 읽어낸 철학자다. 그는 도시의 혼잡과 불완전함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발견하고자 했다. 1975년 설립한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는 오늘날 세계 각지의 공공건축, 미술관, 복합문화공간의 흐름을 바꾼 중심이 되었다. 렘 콜하스와 OMA의 작품에는 밀라노의 Fondazione Prada 외에도 포르투의 Casa da Música, 베이징의 CCTV 본사 빌딩, 시애틀의 공공도서관, 그리고 서울의 서울대학교 미술관과 한남동의 리움 미술관 등이 있다.
Fondazione Prada는 콜하스의 사유가 건축으로 구현된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는 이 건축물을 완전히 새로 짓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그는, 1910년대 증류소의 흔적을 남기고, 그 사이에 새로운 건물들을 삽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오래된 벽돌 창고와 매끈한 콘크리트 타워가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 불균형이 오히려 조화롭다.
특히 금빛 외벽의 'Haunted House(유령의 집)'는 공간의 중심을 형성한다. 낡은 산업 건물의 표면을 24캐럿 금박으로 감싸며, 과거의 무게를 빛으로 덮는 이 장면은 콜하스 특유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아키텍처'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는 낡은 것을 복원하는 대신, 그 위에 새로운 층을 쌓았다. 그래서 이곳의 모든 벽과 바닥에는 '시간'이 흐른다.
이 프로젝트를 두고 건축 전문 매체 The Architectural Review의 평론가 Tim Abrahams는 "Fondazione Prada는 단순히 예술을 위한 그릇이 아니라, 예술이 머무는 방식을 다시 묻는 공간"이라며, "이곳은 밀라노가 그동안 갖지 못했던 지적이고 감각적인 실험의 무대를 채워 넣었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낡은 산업지대를 허물지 않고 도시 속 또 하나의 '생각의 섬'으로 바꾼 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건축 매체 ArchDaily는 '노출된 백색 콘크리트로 완성된 60미터 높이의 타워 Torre는 전시 공간의 개념을 완전히 확장했다'고 평했다.
Fondazione Prada는 현대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에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고 한다. 첫째, 낡은 것을 부수는 대신, 그것을 새로운 구조와 병치시켜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재생의 미학'이다. 기존 증류소를 활용한 재건축은 현대의 리노베이션과 브라운필드 재생 프로젝트들이 추구하는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둘째, '서사적 공간'이다. 그의 건축에서는 동선, 빛, 재료가 각각 하나의 문장처럼 이어지고, 주기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들로 채운다. 공간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경험의 서사가 된다. 셋째, '경계의 해체'. 상업과 예술, 과거와 현재, 공공과 개인의 경계를 흐리며, 그 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건축가의 철학은 현대 인테리어 디자인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불필요한 장식 대신 재료의 질감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빛의 방향과 그림자의 깊이로 분위기를 만든다. 브루탈리즘 콘크리트, 투명한 유리 구조, 황금빛 금속의 대비는 모두 콜하스가 남긴 언어의 변주다. 그리고 이러한 면과 면 사이에는, 무심히 자리한 나무가 있다.
Fondazione Prada를 걷다 보면, '완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상대적인가를 깨닫는다. 이곳의 건축은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상념이 마주 보고, 그 사이를 빛이 천천히 통과한다. 공간은 단단한 형태로 닫히지 않고, 늘 새롭게 열린다. 실제로 공간은 프라다가 큐레이션한 예술을 일정한 주기로 바꿔 채운다.
Fondazione Prada는 빛과 그림자, 재료와 구조, 그리고 사람의 발걸음까지 모두가 하나의 예술이 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은 결국, 기억을 품은 빛의 언어임을 이곳이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