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의 다양화, 계열의 정렬
전주 카페 589 공간 리뷰
전주의 한 카페에 들렀다. 공간이 제법 크고 층고가 높은데, 오히려 밀도 있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서로 감각적으로 충돌하지 않는 다양한 가구와 예술품 때문일 것이다. 이 건물 외벽은 심플하다. 간판 대신 골강판 외장에 숫자 하나만 적혀 있는데, 이게 오히려 내부의 정성을 기대하게 만든다.
들어가면 먼저 천장이 높다는 걸 느낀다. 원래 공장이나 창고였을 건물을 그대로 쓴 것 같은데, 철제 트러스 구조물을 그냥 두었다. 붉은색으로 칠한 게 전부다. 여기서 중요한 선택이 하나 있다. 이 천장을 가릴 수도 있었는데 가리지 않았다. 가리면 높이가 줄고, 공간이 평범해진다. 노출한 덕에 카페 전체가 다른 스케일감을 갖는다. 마감에 돈을 쓰지 않고 오히려 비워둔 결정이 공간의 가장 비싼 자산이 된 셈이다.
바닥은 흰 정사각 타일로 통일되어 있다. 단순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영리한 판단처럼 보였다. 이 공간에는 붉은 철재, 원목 패널, 빈티지 가구, 각양각색의 식물이 공존한다. 바닥까지 무언가를 주장하면 산만해진다. 흰 타일은 그 모든 것을 조용히 받아든다.
카운터와 주방은 원목 패널로 만든 박스 형태로 공간 안에 독립적으로 놓여 있다. 이 구조가 흥미로운 건 높은 천장 아래 낮은 박스를 집어넣어 공간 안에 스케일 차이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창구처럼 난 개구부를 통해서만 내부가 보이는데, 덕분에 주방이 분리된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손님과의 접점은 충분히 확보된다.
가구는 한 스타일로 맞추지 않았다. 우드 슬랩 테이블, 북유럽 목재 의자, 패브릭 소파, 암체어가 섞여 있고, 한쪽에는 업라이트 피아노도 있다. 이런 구성이 잘못되면 그냥 뒤죽박죽처럼 보인다. 여기서 그게 괜찮은 이유는 색온도와 소재 계열이 어느 정도 맞아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나무, 흙빛 패브릭, 빈티지 금속 — 색상의 채도가 전체적으로 낮게 깔려 있어서 형태가 제각각이어도 시각적으로 충돌이 덜하다. 다양함을 허용하되 조건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화장실도 인상적이었다. 작은 정사각 타일로 벽 전체를 짙은 올리브 그린으로 마감했고, 반투명 유리가 끼워진 나무 프레임 문을 썼다. 카페 본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배색인데 어색하지 않다. 화장실은 어차피 별도의 방이고, 다른 톤으로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여기서 선택한 올리브 그린은 공간 곳곳에 들어찬 식물의 색과 은근히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공간은 새로 만든 것보다 원래 있던 것을 살린 비중이 더 크다. 건물 구조, 나무의 결, 오래된 가구들. 설계자가 손을 덜 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더할지를 꽤 정확하게 판단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선택한 인테리어 포인트의 흔적이,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전체로 녹아 있다는 게 이 카페의 감각 포인트가 아닐까.